2층 건물에 네 개의 방이 있고, 집 외벽이 노란 페인트로 칠해진 볕이 잘 드는 ‘노란 집’은 화가인 고흐의 이상과 꿈이 투영된 집이다. “작은 식당에 살면서 썩은 이를 악물고 그림을 그리며 창녀촌에나 드나드는 나 같은 화가를 상상할 수가 없다.”라고 고백한 그는 화가들과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월세 15프랑에 고흐가 임대한 노란 집은 지상에서 그가 차지하는 존재가치 내지는 그만의 고유한 존립근거였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노란 집(1888년 9월)과 그 내부의 침실을 그린 그림(1888년10월)은 그가 남긴 많은 자화상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넬 수 있다. 그의 진정한 모습은 ‘얼굴’ 못지않게 그가 살고 있는 ‘집’과 ‘방’의 모습을 통해 훨씬 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집이나 방을 방문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열리게 하는 마법에 가까운 힘을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란 집’의 대문을 열면 우리는 푸른빛으로 에워싸인 세 벽면과 갈색 빛의 마룻바닥으로 치장한 고흐의 방 안으로 들어선다. 삼 면으로 펼쳐진 벽면의 중앙에는 외부를 향한 노란 빛의 유리창, 그리고 파란 거울과 한 점의 풍경화가 걸려 있다. 노란 수건과 푸른 문이 잘린 채 그려져 있는 왼쪽 벽면과 두 점의 초상화와 노란 빛의 그림 두 점 그리고 푸른 문(아마도 수납공간)이 잘린 채 그려져 있는 오른쪽 벽면이 있다.
이렇듯 푸른빛과 노란 빛의 대립되는 맞섬이 방의 중심으로 응축되고 있다. 세 벽면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물건들은 한 쌍 혹은 두 쌍으로 짝을 이루고 있다. 마룻바닥 위에 놓여진 침대 하나 그리고 베개 둘, 테이블을 사이에 둔 동일한 의자 둘의 배치에서도 사물들은 쌍을 이루고 있어 방주인인 고흐에 대해 재미있는 상상을 가능케 한다. 가령 외부를 향한 ‘유리창’은 노란 태양빛을 머금고 있는 반면에 자신을 비추는 내부로의 유리창인 ‘거울’은 왜 파란 빛을 띠고 있을까. 또는 왜 혼자 살면서 고흐는 마치 신혼부부의 침실처럼 방안의 사물을 쌍으로 배치했을까? 등등. 숨죽인 듯 고요한 가구들 속에서 오히려 치열했던 고흐의 삶을 읽는 것은 지나친 과장일까.
노란집의 오른 채에 세 들었던 고흐는 이 집에서 1888년 9월 18일부터 1889년 2월 9일까지 반년도 채 살지 못했다. 뮤즈의 신이 머물던 이 집에서 고흐는 끝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지 못한 채, 정신적 위기와 좌절에 빠지고 만다. 집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 공포로 나타난 것일까. 자신의 귀를 자르고 만 고흐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고흐는 병원에 있는 동안 이 방을 무척 그리워했다. 자기만의 방이었던 이 곳을 세 번이나 그렸을 정도로 말이다.
출처: 네이버 카페 '프랑스인의 생활예술' (
http://cafe.naver.com/franceculture1.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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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넘 멋져, 따스한 색체, 격동적인 느낌
니가 나보다 먼저 감상했구나 흙흙
역시 너는 뭔갈 아는구나. ^^ 곡 같이 가서 보자꾸나~
와...멋있다..시간내서 함 가봐야 겠는걸요??
ㅇㅇ 정말 강추야~~
우아,,,오빠..여기 갔었어요?
나도 가려고하는데..어떤가?
좋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