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Articles, Search Results for '용산구청

  1. 2007/04/25 용산구청의 횡포와 만행. by driemon
내가 가입한 클럽장 (싸이월드 소통하는 일반인 연대; club.cyworld.com/will2000)  님이 지난주에 홀로 대책위를 찾아 가셨었다.
아래 글은 다녀오시고 나서 쓴 글이다.
----------------------------------------------------------

목요일날 못가서 오늘 토요일날 다녀왔습니다

그냥 한숨이라기 보다는 마음이 무겁고, 무섭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할지요....

용산구청앞 횡단보도에서조차 철거주민의 천막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안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우선, 천막안에는 중년여성 두분이 계셨습니다(교대없이 하신다고 하시네요..어짜피 갈데가 없으니까...)

어느 신문에서 보고 찾아왔다고 하니, 반가워하셨습니다

평일에는 천막마저 못치고, 구청이 쉬는 주말에만 천막을 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선 싸우는 가장 큰 이유는

임대아파트를 구두로만 줬다고 하고, (누군 뭐 6.3빌딩 말로는 못줍니까?)

임대아파트 줬는데, 더 요구한다고 거짓말 퍼뜨리고, 대형 현수막까지 걸어놓았습니다

구청직원들은 다 그렇게 믿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돈을 요구해서 이렇게 농성을 벌인다고요...

하지만 임대아파트를 줬는데, 누가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TT

요구는 이렇습니다

1.서류상으로 임대아파트 주겠다 라는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구청에서는 선례를 남긴다는 이유로 못해주겠답니다)

철거민위원장님은 우리철거민만 잘 돼서 임대아파트를 얻는 것이 아닌, 나중의 선례를 남기기 위해 싸우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위원장님은 40대정도의 아주머니셨습니다)

2. 철거시에는 선대책 후철거

(먼저 철거민들에 대한 대책을 세운 후에 철거..참 당연한 얘기겠지요...)

---------------------------

용산구청장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1인시위 못하게합니다

1인시위하던 아주머니 한분이 그 자리에서 용역직원들한테 맞아서 병원가셨다고 하십니다

하다못해 국회앞에서도 1인시위하는데...참...용산구라는 엄청난 제국 같았습니다.

용산구청 직원들은 용산구청장 집에서 항의하는 철거민까지도 몰아세웁니다

얼마전에도 mbc에서 용산구청장에 관련 기사가 났습니다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214&article_id=0000016392&section_id=100&menu_id=100

하지만 별다른 나아짐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용산구청장의 힘은...아마 용산의 건설계획에 따른 건설회사등등이 관련되어 있어서일겁니다

이런 기사보도 이후에 용산구청장은 이미지 훼손했다는 이유로

제가 만나뵌 철거주민위원장님(40대 아주머니)를 구속수감하게 됩니다

(아직도 이런 법집행이 있다니 어이가 없습니다

자기 주장을 하려고 하니, 재판장은 괴씸하다며 벌금형에 처할 것을 수감하게 됩니다)

3개월을 수감되셨는데 불구하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휴...

------------------------------

용산 구청 바로 옆의 용산 경찰서...

경찰서장보다 구청장이 더 세다는 이유로, 민중의 지팡이가 아닌, 구청장의 개인 보호를 맡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이 신변보호를 요청해도, 오히려 구청장을 보호하기에 급급하다는군요...

다른 아주머니께서 소복을 입고 농성하실때 구청에서 물을 뜰려고 하니,

용역직원들이 발로 걷어찼답니다

민원업무를 보던 일반인들이 "왜 그러냐"며 신고했습니다

경찰이 도착하여, 그 아주머니의 잘못이 크다고 하자, 일반인 두분은 믿을 수 없다며 항변하였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제 3자는 끼지 마십시오"

라고 하더랍니다.

제3자라....휴...

--------------------------------
출처: 싸이월드 클럽 '소통하는 일반인 연대'
(
club.cyworld.com/will2000)

이렇든 용산구청에서는 말로는 임대아파트 제공해준다고 하고서는, 구두가 아닌 서류로 확정해 달라는 철거민들의 요구를 온갖 폭력과 거짓 비난으로 진실을 오도하고, 이들의 정당한 투쟁마저도 억압하고 있다. 저위의 MBC 뉴스영상에서도 보듯이 이미 용산구청장은 많은 건설업체와 비리의 거래를 해오고 있는것이 드러나고 있다. 더러운 돼지새끼들.

모든 투쟁이 힘들지 않은 것이 어딨겠냐만. 철거투쟁은 정말 힘들다. 물론 내가 해본것은 아니다. 나도 보고 들은 바에 그렇다는 것이다. 매우 위험한 폭력과 위험에 항시 노출되 있고, 투쟁력의 조직도 매우 힘들다. 대부분은 턱도없는 이주비를 받고 떠나기 때문이다. 거주지 자체가 투쟁이 되는 곳이기 때문에 생활적 어려움은 극에 달한다. 이러한 점은 아래의 민중의 소리 전문수 기자가 쓴 글에 잘 나온다. 작은 연대, 소식을 외부에 알리는 것이라도 그들에게는 절실하다.

철거당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철거당한 세입자들 용산구청 앞 노숙투쟁
전문수 기자   전문수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재개발로 쫓겨난 세입자들이 길바닥에서 추운 겨울밤을 보내고 있다. 서울 용산동5가 세입자대책위원회가 1월 1일부터 용산구청 앞에서 ‘날바닥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추위와 배고픔보다 “철거민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용산구민으로 인정 않는 것이 억울하고 분한 일”이라고 말한다.
  
  

△용산구청앞에서 용산동5가 세입자대책위가 잠을 자고있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이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2003년부터 시작해 4년째 접어드는 긴 투쟁의 시간동안 버티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2003년 1400여 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용산동5가에 재개발이 결정되고 9월 철거민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긴 투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버티다 결국 철거가 시작되었다. 2004년 6월 위원장의 집이 철거된 것이다.
  
  이어 9월에는 총무를 비롯한 ‘주요인물’들의 집이 철거되었다. 위원장이 집을 잃으면서 마을 골목에 천막을 쳤다. 하지만 위원장은 천막에서 나오지 못했고 천막에 들어갈 사람만 점점 많아졌다.
  
  이후 또다시 1년을 버텼지만 얻은 것은 없었다. 2005년 7월 마을 골목에서도 쫓겨난 것이다. 쫓겨난 후 이들은 건설현장 입구에 천막을 세우려 했으나 ‘친절한’ 경찰과 용역깡패는 손수 천막을 세워줬다. 단지 근처의 공원 안으로 위치만 조금 바뀌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경찰은 “여기에는 (천막을)쳐도 괜찮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괜찮기는... 불과 4개월 후 2005년 11월 한달 동안 이들은 다섯번 뜯기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한다.
  
  이후 다시 1년 2006년 11월 13일 300여명의 경찰과 공무원과 용역에 공원의 천막이 철거당한다. 당시 세대위중 두 명은 봉고차에 있었는데 천막을 철거한 이들은 봉고차의 유리창을 깨고 이 두 명을 끌어낸 후 봉고차를 견인해갔다. 이 봉고차는 각종 집회용품을 싣고 다니며 방송차 겸 운반차량으로 쓰던 것. 하지만 견인된 곳으로 가 찾아와보니 차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해 11월 13일 저녁 세대위는 용산구청 앞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후 14일 새벽 이 천막마저 철거당했다. 그 뒤 이들은 차에서 생활을 하며 구청 앞에서 계속 투쟁을 전개한다. 하지만 낡은 차는 쓸 수 없을 정도로 고장나버리고 다른 이들이 새해를 맞아 기뻐하던 1월 1일 이들은 구청 앞에서 노숙을 하기로 결정한다.
  
  "비오면 어떡해요?"
  "어떡하기는 그냥 자는거지."
  
  순간 잘못 물어봤구나 싶었다.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인데 비 온다고 갈 수는 없잖은가. 오늘 밤도 이들은 용산구청 앞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낮에는 1인시위나 집회를 한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잠자리를 준비하는 모습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철거당하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고
철거당한 세입자들 용산구청 앞 노숙투쟁
전문수 기자   전문수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재개발로 쫓겨난 세입자들이 길바닥에서 추운 겨울밤을 보내고 있다. 서울 용산동5가 세입자대책위원회가 1월 1일부터 용산구청 앞에서 ‘날바닥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추위와 배고픔보다 “철거민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용산구민으로 인정 않는 것이 억울하고 분한 일”이라고 말한다.
  
  

△용산구청앞에서 용산동5가 세입자대책위가 잠을 자고있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이들이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했던 것은 아니었다. 2003년부터 시작해 4년째 접어드는 긴 투쟁의 시간동안 버티려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다.
  
  2003년 1400여 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용산동5가에 재개발이 결정되고 9월 철거민대책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긴 투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버티다 결국 철거가 시작되었다. 2004년 6월 위원장의 집이 철거된 것이다.
  
  이어 9월에는 총무를 비롯한 ‘주요인물’들의 집이 철거되었다. 위원장이 집을 잃으면서 마을 골목에 천막을 쳤다. 하지만 위원장은 천막에서 나오지 못했고 천막에 들어갈 사람만 점점 많아졌다.
  
  이후 또다시 1년을 버텼지만 얻은 것은 없었다. 2005년 7월 마을 골목에서도 쫓겨난 것이다. 쫓겨난 후 이들은 건설현장 입구에 천막을 세우려 했으나 ‘친절한’ 경찰과 용역깡패는 손수 천막을 세워줬다. 단지 근처의 공원 안으로 위치만 조금 바뀌었다.
  
  당시 그 자리에 있던 경찰은 “여기에는 (천막을)쳐도 괜찮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괜찮기는... 불과 4개월 후 2005년 11월 한달 동안 이들은 다섯번 뜯기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한다.
  
  이후 다시 1년 2006년 11월 13일 300여명의 경찰과 공무원과 용역에 공원의 천막이 철거당한다. 당시 세대위중 두 명은 봉고차에 있었는데 천막을 철거한 이들은 봉고차의 유리창을 깨고 이 두 명을 끌어낸 후 봉고차를 견인해갔다. 이 봉고차는 각종 집회용품을 싣고 다니며 방송차 겸 운반차량으로 쓰던 것. 하지만 견인된 곳으로 가 찾아와보니 차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지난해 11월 13일 저녁 세대위는 용산구청 앞에 천막을 쳤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후 14일 새벽 이 천막마저 철거당했다. 그 뒤 이들은 차에서 생활을 하며 구청 앞에서 계속 투쟁을 전개한다. 하지만 낡은 차는 쓸 수 없을 정도로 고장나버리고 다른 이들이 새해를 맞아 기뻐하던 1월 1일 이들은 구청 앞에서 노숙을 하기로 결정한다.
  
  "비오면 어떡해요?"
  "어떡하기는 그냥 자는거지."
  
  순간 잘못 물어봤구나 싶었다.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인데 비 온다고 갈 수는 없잖은가. 오늘 밤도 이들은 용산구청 앞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낮에는 1인시위나 집회를 한다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잠자리를 준비하는 모습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민중의소리 전문수 기자

출처: 민중의소리 (www.vop.co.kr)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driemon.

Leave your greetings here.

[로그인][오픈아이디란?]